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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사_죽산 조봉암 선생 서거 64주기 추모식 추도사



죽산 조봉암 선생 서거 64주기 추모식 추도사

김교흥 국회의원

 

죽산 조봉암 선생 서거 64주기를 맞이했습니다. 죽산은 굴곡진 한국의 근현대사 속에서 험난한 삶을 살았지만, 만인이 평화롭고 함께 잘 사는 나라를 꿈꾸었습니다.

 

우리가 못한 일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 후배들이 해 나갈 것이네. 결국 어느 땐가 평화통일의 날이 올 것이고 국민이 골고루 잘 사는 날이 온다네. 나는 씨를 뿌리고 가네

 

죽산이 옥중에서 진보당원에게 남긴 유언으로 당신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대한민국의 민주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소망하셨습니다.

 

죽산의 서거 이후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전진과 역행을 교차하며 나아갔습니다. 19597월 죽산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채 1년도 안돼 자유당 정권은 4·19혁명으로 붕괴되었습니다. 그러나 5·16 쿠데타가 일어나 박정희 군부 독재가 18년이나 이어졌습니다.

 

학생과 시민들은 포기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외쳤고, 고난을 감내했습니다. 마침내 1998년 김대중 정부의 수립으로 선거를 통해 최초로 여야 간의 평화로운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습니다.

 

대한민국은 25년간 정권 교체가 민주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이는 죽산이 뿌린 작은 씨앗이 민중의 피와 땀으로 꽃피워 낸 것입니다.

 

죽산은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건국에 앞장서신 자랑스러운 우리 인천인입니다.

 

서울, 도쿄, 모스크바,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붙잡혀 신의주형무소에서 7년간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해방 이후 제헌의회 선거에서 지금의 인천 부평구, 계양구, 서구, 동구 지역인 을구에 출마해 당선되었고, 헌법 기초위원으로도 활동하셨습니다.

 

또한 대한민국 정부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서 농지개혁을 추진해 자기 땅이 없었던 가난한 농민들에게 농지를 제공했습니다. 특히 제2·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시대를 앞서 평화통일과 정치혁신을 주장하며 대중들의 많은 지지를 받기도 했습니다.

 

죽산의 완전한 명예회복을 위해 국가가 먼저 나서야 합니다.

 

조봉암 선생은 3·1운동을 포함해 일제강점기때 세차례 옥고를 치렀습니다. 그리고 농지개혁과 계획경제를 이끌어 대한민국의 경제체제의 기반을 다졌지만, 현재까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2007년 대통령 직속 진실화해위원회는 죽산을 독립유공자로 인정하는 것이 상당하다고 권고했습니다. 2011년 대법원은 죽산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던 진보당 사건에 대해 무죄를 판결했습니다.

 

죽산의 유가족들이 수차례 독립유공자 서훈을 신청했지만 국가는 빈약한 근거를 들며 이를 거절했습니다. 국가는 죽산에 대한 재평가를 통해 죽산이 대한민국의 독립과 건국에 기여한 공로를 온전하게 존중받을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끝으로 오늘 함께 자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죽산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해주시는 이성란 죽산조봉암선생유족회 대표님, 이모세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 회장님을 비롯한 관계자 여러분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