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발언
평화민주통일연구회 창립 30주년 기념식 모두발언
평화민주통일연구회 창립 30주년 기념식 모두발언
□ 일시 : 2018년 2월 2일(금) 오후 5시
□ 장소 :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
■ 추미애 대표
지난해는 국민들이 길을 열어주셨고, 더불어민주당이 죽었다 깨어나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반드시 정권교체를 해 내겠다는 약속을 드리고, 2016년에 취임한 당대표로서 2017년 하루하루 보냈다. 국민과 뜻을 함께 할 수 있어서 복이 많은 정치인이다.
그런데 이곳에 계신 선배님들께서는 국민을 손 놓지 않고 척박한 길을 가기 위해서 무수한 탄압과 월급은커녕 없는 돈 털어서 50만원을 내면 20만원 받아가는 계산이 안 맞는 젊은 시절을 헌납하셨다. 결코 사라지지 않은 족적이 되고 길이 되어 87년이 있었기에 2017년이 가능했고, 그때 헌법이 개헌투쟁으로 이어졌고, 그때의 헌법이 직선제 개헌일 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를 통해서 헌정질서를 복귀할 수 있는 헌법적인 방법을 열어놨기 때문에 2017년 촛불혁명은 헌법재판소를 통해서 완결을 볼 수 있었다.
선배님들께서 열어주신 길이 2017년 방점을 찍었는데, 우리 지선스님께서 여전히 아쉬움과 유감이 많은 것처럼, 당연히 꾸짖음을 들어야 될 일인데, 아직도 채우는 일이 많이 남아있다. 국정공백을 메우는 일뿐만 아니라 그동안 권력이 부패해서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할 검찰조직 내가 썩어문드러져서 여성 검사를 성추행하고도 인사로 물을 먹이는 조폭도 하지 않는 일을 자행하는 이런 시대를 살고 있다. 하나씩 질서를 바로 잡아 나가고 국민주권을 세워나가야 하는 이 엄중한 때에 아직도 지켜야 하는 평화, 아직도 일구어내야 하는 민주, 아직도 과제로 남아 있는 통일을 향해서 변함없이 열정을 모아주고 계시는 선배님들 면면을 보니까 아까 김현 대변인이 “꽃다운 23세에 와서 30년이 지났다”고 했는데 저도 그 시절과 더불어서 제가 입당했을 때 저를 안내해 주신 이 자리에 계신 선배님들이 다 생각이 나고 마치 과거로 되돌아가는 듯 한 느낌이다.
끝나지 않은 미래는 우리가 걸어가야 될 변함없는 길이다. 다행히 평창올림픽이 평화올림픽으로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이때에 평화, 민주, 통일이라는 어느 누구도 짐 지지 않았던 감히 짐 질수도 없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지 않고 져주신 선배님들의 보람이 온 국민이 평가하고 배우는 기념사업회 토대를 닦아내는 일을 통해서 영화 ‘1987’뿐만 아니라, 문화 사업뿐만 아니라 역사사업 등 모든 것을 제대로 해내서 평화, 민주, 통일의 명맥이 꾸준히 이어지고 국민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하겠다.
지선스님께서 하명하신 분부,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 장롱 속에 보관하신 “위민이 위불이다”하는 대통령님의 휘호를 요즘은 SNS가 발달되어 있어서 조만간 사진을 찍어서 공개를 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보고 싶다.
■ 우원식 원내대표
평민연으로 당에 들어온 지가 벌써 31년이 됐다고 하니까 ‘벌써 그렇게 됐나’, 정말 까마득하다면 까마득한 기간인데 30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평민연이 이렇게 들어왔고, 활동하고, 이것이 거의 제 삶에 있어서 중심적인 활동이고, 가치였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정말 이해찬 선배님 비롯해서 그 때 깃발을 든 중심이었던 임채정 의장님 또 이길재 선배님, 서경원 의원님, 배기선 형님, 장영달 형님 등 정말 이름을 다 댈 수 없는, 박성모 의원님도 계시다.
정말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 쫓아서 당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그리고 정당에 들어가서 어떻게 활동해야 되는지도 잘 모르고 들어온 길이 평민당 입당이었다. 딱 하나 ‘어려움에 처한 김대중을 살리자’ 그리고 ‘민족민주운동 했던 세력들이 정치세력화 하는 것도 함께 해보자’는 마음으로 들어왔다. 선배님들은 13대 선거에서 출마를 여러분 하고 당선도 많이 돼서 정치세력화의 가능성을 활짝 열기도 했다. 또 하나는 청년활동가로 들어온 남근우 선배를 비롯해서 윤여연 선배 이런 분들과 함께 50여명이 청년활동가였다. 저도 그 때 30살 정도였다. 청년활동가들이 모여서 굉장히 고민도 많이 하고, 밤을 세워가면서 토론도 하고, 잘 안 될 때는 술도 진탕 먹기도 했다. 그러다 돈 떨어지면 이길재 선배님이나 임채정 의장께 전화를 해서 밤에 돈 좀 갖고 나오라고 한 적도 있다. 뒤에 있는 박진화, 김현미 장관의 남편인 백장현, 임재선 이런 사람들이 사무실을 지켰는데 김현 대변인도 있었다. 제가 총무간사였고, 임재선은 조직국장이었고, 김현미 장관 남편 백장현은 정책실장을 했었다. 그리고 박진화는 늘 왔다 갔다 하는 화가로 있었다. 그 때는 술을 어찌나 많이 먹었는지, 대선에서 지고 일은 잘 안 풀리고, 정말 어려운 일에 목숨을 던지는 열사들도 많았다. 그런 속에서 정말 어렵게 지냈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정당 안에서 늘 일하는 조직, 가치를 중심으로 논의하는 조직이 만들어진 것은 우리 정치의 새로운 장을 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30년 지나서 보니까 우리당 전체가 그 때 평민연이 들었던 깃발을 우리당 전체가 들고 있고, 그 이후에 김대중, 노무현을 거쳐서 문재인정부가 그 때 우리가 생각했던 가치를 그대로 들고 있어서 우리의 그 때 입당 그리고 우리의 고민은 전혀 헛된 일이었다고 누가 이야기 한다면 그것은 멱살 잡고 싸워야 될 일이라고 할 만큼 자부심을 갖는 활동이었다고 생각한다.
저희들이 들어와서 정말 열심히 했다. 처음 들어왔더니 월급을 한 푼도 안 줬다. 아침에 나와서 인사하고, 일은 해야 하는데 점심때가 되면 누구한테 밥 얻어먹을 곳도 없고, 대게는 아침만 보고 점심때면 사무실에 사람들이 다 사라졌다. 그래서 도저히 안 돼서 국회의원 선배들을 붙잡고 회비를 많이 걷어서 나눠 갖는 그래서 처음으로 정당에서 월급은 아니지만 4대보험에 든 것도 아니지만 20만 원씩 나누어서 활동비로 쓰면서 했는데 50명 중에 6개월 지나니까 20명 정도 남았다. 그렇게 남아서 끝까지 버틴 사람이 윤호중 등을 비롯한 분들이 지금까지 같이 해오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정말 열심히 일했다. 저는 인권위원회 부국장 활동을 했는데 설훈 선배가 민원부국장이었고, 저는 인권부국장이었다. 2년 동안 현장을 다니면서 열사들 인권침해를 잘 모아서 책을 냈더니 김대중 총재께서 정당 사상 처음 나온 인권백서라고 해서 그 책을 그 때 노태우 대통령께 가져다주면서 책 보고 세상 좀 제대로 하라고 이야기를 하시고, 저에게 큰돈인 200만 원을 주셨었다.
그런 평민연, 마음속에 저의 가장 자랑이기도 하고, 그 어려운 시기에 함께 결단했던 동지, 선배들이 함께 있는 이 평민연을 저도 끝까지 정말 사랑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가겠다는 말씀 드리면서 평민연의 가치, 깃발 이것은 저도 정치를 다할 때까지 내려놓지 않고 들고 가겠다는 말씀드린다. 제일 먼저 인사하게 되어 죄송하고, 황송하다.
2018년 2월 2일
더불어민주당 공보국